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법무법인 태평양 홈페이지 캡처)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법무법인 태평양 홈페이지 캡처)

[월드경제=유상석 기자] 이틀 앞으로 다가온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에서,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의 사외이사 선임이 확실시 된다.  

삼성전자가 정통 금융관료 출신의 장관급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재계와 금융권에선 그룹 지배구조의 잠재적 리스크인 이른바 '삼성생명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오는 20일 제55기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신 전 위원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부의할 예정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신 전 위원장은 행정고시 24회에 수석 합격해 재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2005년 한미 FTA 협상에서 금융분야 한국측 수석대표를 맡아 이름을 알렸다. 이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획재정부 제1차관 거쳐, 2013년 3월 제4대 금융위원장이 됐다. 2015년 3월에 임기를 마친 뒤, 2017년부터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다. 롯데손해보험과 HDC 사외이사직에도 있었으나, 이번 삼성전자 사외이사 영입을 계기로 물러났다.

삼성전자가 이 전 위원장을 영입한 이유로는 보험업법 일부 개정안, 이른바 '삼성생명법'이 거론된다.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보유액수를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계산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지난 2014년 이종걸 전 민주당 의원이 처음 발의한 이 법은 2020년 민주당 이용우‧박용진 의원 등이 재차 발의했다. '삼성생명법'이라는 별칭이 붙은 건, 사실상 적용 대상이 삼성생명 뿐이기 때문이다.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계열사 주식을 총 자산의 3%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고객으로부터 받은 돈을 특정 자회사에 과도하게 투자하면 자산운용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다.

1980년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취득하던 당시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기업 가치가 천문학적으로 상승하면서, 현재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8.51%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따라서 '삼성생명법'이 도입되면, 삼성생명은 상당수의 주식을 처분해야만 한다.

이런 상황이 실제로 발생한다면, 이재용 회장에게는 대재앙이다. 지배구조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는 탓이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 지분 18.1%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삼성물산은 삼성생명 지분 19.34%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 회장은 삼성생명 지분도 10.44% 갖고 있다.

최악의 경우, 이 회장 일가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기존 20.57%에서 8%대로 급락하게 된다. 외국인 지분율이 54%대인 상황에서, 지배구조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삼성생명법 관련 논의는 한동안 잠잠했다. 그러나 지난 2022년 박용진 의원이 기자들을 대상으로 '법안 설명 기자간담회'까지 여는 등 이슈몰이에 나섰다. 결국 박 의원의 의도대로 되진 않았지만, 삼성 내부적으로 위기감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같은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주식을 원가보다 시가로 하는 게 회계원칙에 맞다는 주장에 동의한다"고 발언해, 삼성 측을 긴장시켰다.

이같은 위기감이 삼성생명이 아닌 삼성전자가 직접 고위 금융관료 출신을 영입한 배경이 된 것이다.

신 전 위원장(행시 24회)은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행시 29회)과 김주현 금융위원장(행시 25회)의 고시 선배이면서 서울대 동문이다. 검사 시절 삼성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서울대 경제학과 선배이기도 하다.

신 전 위원장은 삼성생명법이 최초 발의된 2014년 금융위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삼성생명법에 대한 반대 의사를 보이기도 했다.

신 전 위원장은 같은해 4월 국회 업무보고에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보유량 자체를 문제 삼긴 어렵다. 계열사 주식 보유량이 과도해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경우, 공정거래법 등 다른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재계와 금융권에서는 신 전 위원장이 삼성전자 사외이사 직에 오르면, 금융당국과의 스킨십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