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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경제=유상석 편집국장] 20일 오전, 우리금융지주·우리은행 본점에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주요 내용은 내부통제 강화 방안이었다.

내부통제 방안... 딱히 새로운 주제가 아니다.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우리은행에 '검사본부'라는 부서를 신설한 게 불과 이달 7일이다. 지난 3월엔 연세대 법무대학원과 '내부통제 전문가과정'을 개설해 내부 인원들을 교육시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금융 계열사의 준법감시·자금세탁방지 실무자 22명으로 구성된 '그룹 내부통제 현장자문단'도 출범했다. 그러더니 이번에 새삼스럽게 또 내부통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검사본부'를 신설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전북지역 한 지점에서 미화 7만 달러를 빼돌리려다 적발된 사건이 발생했으니 그럴 만도 한 걸까.

어쨌든, 우리금융 측은 내부통제 혁신방향이라며 ▲내부통제 체제 개편 ▲임직원 인식 제고 ▲역량 강화의 세가지 주제를 제시했다. 지금까지는 체제 개편도 안됐고, 인식도 제고되지 않았으며, 역량도 약해서 금융사고가 터진 것일까.

구체적으로는 우리은행이 이달 초 정기인사에서 지점장급 내부통제 전담 인력 33명을 영업본부에 신규 배치했다고 했다. 어떤 경력을 거친 인물들이며 어떤 일을 구체적으로 하게 될 지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지점장급이긴 하지만, 딱히 '자리가 없는' 인사들을 억지로 떠민 것은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신사업 추진 시에는 해당 사업에 정통한 타 직원에게 리스크를 크로스체크할 권한을 신설한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신사업 추진 시 크로스체크 조차 거치지 않았다는 의미일까.

그러면서 내부통제 인식 제고를 위해 전 직원이 최소 한 번씩은 내부통제 업무경력을 갖출 것을 의무화하고, 지점장 승진 평가에 내부통제 경력을 반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게 가능할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취재진에게 우리금융 측은 "내부통제 관련 업무를 1인당 6개월~1년 정도 담당하면 전 직원이 순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대학원과 협업까지 해가면서 내부통제 '전문가'를 만들겠다던 포부는 어디 가고, 이제는 6개월~1년 정도만 근무시키겠단다.

압권인 건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임원들의 발언이다. 한 임원은 횡령사고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의에 이런 대답을 했다.

"내부통제를 강조하고 있음에도 사건이 일어난건 죄송하지만, 조기에 발견해서 더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지 않은가. 오히려 내부통제가 정상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인간의 본성을 못 이긴다."

또 다른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촘촘한 시스템을 뚫고 사건사고가 나는 걸 보면 인간의 본능이 무섭다는 걸 느낀다.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해 이제는 본능까지도 감지하고 잡아낼 수 있는 제도·전산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혁신방안을 준비한 것이다"

아, 이런! 이제 하다하다 '본능 탓'이라니...

문득 한 달 쯤 전 보도가 떠올랐다. 금융사 내부통제와 관련해 CEO의 책임 소재가 명확해진다는 소식이었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22일 발표한 '금융회사 내부통제 제도 개선 방안'에 따르면 조직적·장기간·반복적으로 내부통제와 관련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를 '시스템적 실패'로 간주해 CEO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했다. 내부통제 관리 조치를 수행하지 않거나 불충분하게 실행한 임원을 상대로 해임 요구, 직무정지, 문책경고 등의 제재를 부과할 수 있도록 명문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갑작스럽게 기자간담회를 열고 '인간의 본능' 탓 운운한 것은 "경영진은 할만큼 했다. 실무자들 즉, '아랫 것들' 탓일 뿐이다"라고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현재 우리금융을 이끌고 있는 이는 임종룡 회장이다. 무려 금융위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런 '임종룡호' 우리금융이 기자들 앞에서 '본능 탓'을 한 건 너무하지 않았나 싶다. 

쉽사리 납득되진 않지만, 어쨌든 이번 내부통제 방안 발표를 계기로, 앞으로는 우리은행 등 우리금융 계열사에서 금융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더는 접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