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경제신문】가습기 살균제의 주성분으로 사용돼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독성물질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20년 가까이 엉뚱한 이름으로 유해하다고 공표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PHMG에 대한 유해성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태가 장기화돼 인명 피해가 확대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결과적으로 가습기 살균제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정부가 날려버린 셈이다.

고용노동부는 3일 발표한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1997년 2월 유공(현 SK케미칼)이 보내온 PHMG가 유해하다는 조사보고서를 뒤늦게 발견했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같은 해 관보에 PHMG 대신 ‘YSB-WT’라는 이름으로 독성을 공표한 사실도 확인했다. 아울러 YSB-WT가 PHMG의 과거 상품명이었다는 사실도 SK케미칼을 통해 유공 시절 근무자로부터 확인했다고 밝혔다.

고용부의 이 같은 발표는 지난달 26일 국회 국정조사에서 정부가 PHMG 개발업체로부터 1997년 유해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받고도 2011년까지 은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데 따른 것이다.

고용부는 YSB-WT를 PHMG로 판단하는 근거로 조사보고서상 명칭과 공표목록의 명칭은 일치하지 않으나 유해성 및 조치사항이 일치한다는 점을 들었다. 또한 PHMG를 YSB-WT란 이름으로 쓴 것은 개발업체인 유공이 신규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보호해달라고 신청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규화학물질 유해성 조사기준 제5조에는 신규화학물질에 관한 정보를 보호받고자 하는 경우 정보보호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YSB-WT의 유해성 및 조치사항도 같은 해 환경부 등 관계부처에 통보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았다.

이 같은 고용부의 발표는 사회적 파장이 계속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주성분인 PHMG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조계는 유공 측이 신청했다는 정보보호는 원칙상 3년 기한인데도 19년 넘게 계속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고용부 행위는 16년 동안 PHMG의 유해성을 사실상 은폐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고용부가 PHMG를 엉뚱한 이름으로 쓰는 동안 2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잠재적 피해자도 2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에 따른 일차적 책임은 옥시,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제조판매사에 있다. 그렇지만 정부의 무지와 무관심, 무능 또한 이번 사건을 확대시키는데 일조했음을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 16년 간 정권은 바뀌었지만 국민의 생명을 소홀히 취급하는 정부의 행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를 더욱 서글프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