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월드경제신문】◇ 분열과 갈등 뛰어넘어 새로운 이정표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5일의 역사적 한국 방문을 성료하고 로마 교황청에 귀환했다. 금번 교황의 방한은 역대 세 번째로서 즉위 후 아시아 첫 방문지이자 세 번째 해외 여정으로 25년 만 이다.

교황청은 해방 이후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1963년 김용식 외무부 장관이 한국 각료로는 교황 바오로 6세와 첫 단독 회견하고, 동년 12월에는 교황청과 외교 관계를 공식 수립했다.

한국에 천주교가 도래된 지 2백주년 기념을 위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땅에 입 맞추면서 한국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를 기원한 것은 그 절정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 도처에서 이데올로기와 종교와 정파를 초월하여 놀랍도록 주목을 끄는 흡인력 파워는 검소함과 사회적 약자에 공세적 배려이다.

교황이 방한 첫날 방탄차 대신 거구에 소형 승용차 쏘울을 탄 파격 행보는 존경과 찬사를 흔쾌히 끌어올렸다. 낡은 구두에 낡은 가방을 직접 든 교황의 '청빈 패션'은 신선함 그 자체다.

20년 넘게 착용한 은제 목걸이는 변색될 정도로 낡았으며, 손목에는 14년 전 50달러를 주고 플라스틱 시계를 찼다. 13년 전 추기경에 봉헌되었을 때도 전임자가 입던 옷을 물려받은 단벌 신사이다. 어느 누가 그를 초라하다 할 것인가!

또한 교황은 평소 소외계층에 각별한 애정을 품은 자비의 성품 따라 수차례 세월호 유족과 장애인 등 우리 사회의 상처받은 이들에게 온유의 손길로 아픔을 감싸 안았다.

교황은 분초를 쪼갠 일정조차 세월호 유가족에게 선물 받은 노란색 리본을 옷에 달고 다녔고, 출국에서조차 그 리본을 떼지 않았다.

당시 취재진들이 "교황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말하자, 그는 "고통 앞에서 중립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렇듯 의례적 겸손이나 공허한 수사법이 아닌 교황의 지행합일 언행은 절망과 낙망에 찌든 세인들에게 희망과 소망을 자발 고무시킨다.

그럼에도 교황의 방한 사역은 특정계층에 국한되지 않아 경이적 시각을 연신 확장시킨다. 수호천사로서 화해와 용서의 키워드를 가슴에 품고 코리아를 찾은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기간 중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사랑(166회), 이어 한국(120회), 공동 3위는 마음과 사람(101회)이었다.

◇ 죄지은 자,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4일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국 땅을 밟자마자 건넨 첫 일성은 “한반도 평화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 “였다. 교황은 방한 첫날 청와대에서 "진정한 평화는 전쟁의 부재가 아닌 정의의 결과"라며 "정의는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 협력을 통해 성취하는 것"이라 선포했다.

한국을 떠나기 앞서 서울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한 교황은 신약성경의 마태복음을 인용“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며, 화해와 용서를 거듭 주문한다.

남북한이 서로 진심 어린 대화로 화해를 위한 노력에 나설 것을 공포한 이 날 미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새터민(탈북자)과 실향민 등이 참석해 한층 빛을 발했다. 일촉즉발 대치국면의 북한에 전향적 포용을, 한국사회 사분오열 쇄신의 화두를 세차게 던진 것이다.

또한 교황은 이날 ‘미사 강론’에서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구현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얼마나 질적으로 과연 기여했는가? 하는 치열한 성찰을 요망하면서 온건한 사회변혁의 주체로서 청지지 소임의 촉구는 참으로 시의적절 했다. “저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 나라에, 특별한 방식으로 한국 교회에 베풀어 주신 많은 은혜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온 민족이 함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간청을 하늘로 올려 드릴 때, 그 기도는 얼마나 더 큰 힘을 지니겠습니까!”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에 교황 바오르 2세는 광주를 직접 찾아 “1980년 5월의 아픔을 겪은 광주시민의 마음에 화해와 용서의 은혜가 내리길 기원한다.” 위로한바 있다. 당시 교황은 1989년에도 한차례 한국을 더 방문했다.

교황이 한번 다녀갔다 해서 우리 사회가 돌변하는 유토피아 도래는 없을 것이다. 교황의 소탈과 겸손, 전인일체 공감과 소통의 원대한 기운이 일취월장하는 그 순간들을 학수고대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19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조카 일가족이 아르헨티나에서 교통사고로 비극적 참사에 심심한 애도와 위로를 드린다.<蘇晶炫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