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성장 우려...구매력 떨어진 국민은 더 가난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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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경제=김헌균 기자] 엔화 가치 하락이 계속되면서 일본 기업들의 실적 전망치가 폭등하고 있다. 

최근 국제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달러당 150엔을 넘어 152엔 수준까지 근접했다. 152엔마저 뚫는다면 엔화 가치는 버블 경제 붕괴 초반이던 1990년 이후 3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 된다. 

엔저로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내수 물가 상승으로 인한 제품 가격 상승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의 이익 규모가 극대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6일 도쿄증권거래소 프라임 시장에 상장한 1020개 회사의 2024년 3월기(2023년 4월~2024년 3월) 순이익 전망치를 합산한 결과 전년대비 13% 증가한 43조4397억엔(약 375조7534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전년대비 6% 증가가 예상됐던 지난 9월 시점보다 7%포인트 높아진 수치이며 3년 연속 최고 이익 달성도 확실시된다. 채산성을 나타내는 매출액 순이익률(매출액/순이익)도 6%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두번째 수준이다.

특히 도요타는 일본 기업 사상 최초로 영업이익 4조엔 돌파 기록을 세울 것으로 전망됐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도요타의 매출액은 같은 기간 16% 증가한 43조엔(약 372조원), 영업이익은 65% 늘어난 4조5000억엔(약 39조원)으로 예상됐다.

주목할 점은 생산판매 실적과 함께 환율 효과다. 엔화 가치 약세는 가격 인상과 함께 도요타의 이익 증대를 이끌고 있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번 실적 전망 때보다 환율로 인한 영업이익 증가 효과가 1조1800억엔(약 10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영업이익 수정 전망 1조5000억엔(약 13조원) 중 78%가 환차익이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호실적은 장기화되고 있는 엔저 순풍이 일본 기업들을 견인한 덕분이다. 일본 기업들은 같은 제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나가도 가격 경쟁력이 생기는 환율 혜택을 누리고 있다.

또 요즘 일본은 저성장이 만성화된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수십년간 변동이 없던 물가가 오르고 이를 계기로 모처럼 기업들도 제품 가격을 인상하면서 실적 개선을 이뤘다.

하락한 엔화를 사서 일본 주식에 투자하려는 외국인 자금이 몰리면서 증시도 훨훨 날고 있다. 최근 닛케이평균주가는 상승을 거듭하며 3만3500 선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7월 3일 연중 최고치(3만3753)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이시카네 준 미쓰비시UFJ자산운용 수석 펀드매니저는 "해외 투자자들이 미국 기업보다 일본 기업 투자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엔화 약세의 부양 효과가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 기업의 성장세가 계속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많은 일본 기업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긴 탓에 수출 기업의 실적 개선이 임금 인상과 가계소득 증가의 선순환 고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엔저로 엔화 구매력이 하락해 일본 국민들은 더 가난해지고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물가 상승에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중국 경기 둔화 등 마이너스 요인도 부각되고 있어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과제"라고 말한다. 

한편 100엔당 860원대까지 낮아진 우리나라의 엔화 대비 원화 환율 문제도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일본 정부는 디플레이션에서 확실히 탈출하기 전까지 엔저에 브레이크를 밟을 생각이 없어 보이며, 이로 인해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경합하는 한국 주력 제품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슈퍼 엔저 장기화의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우리 경제 구조를 고도화하고 수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