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만 어필' 삼성전자, 감성의 애플 못 당해
2005년 '모토로라 레이저' 인기 돌이켜 보길
감성·장기전략 전문 인재, 이제부터라도 대우해야

※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자료입니다. Bing 이미지 생성기를 이용해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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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경제=전경웅 객원칼럼니스트/자유일보 기획특집부장] 갤럭시가 S24 등을 내놓으면서 애플 아이폰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이번에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초고성능의 S24를 내놓으면서 자신만만했던 삼성전자 경영진은 또 온라인에서 비아냥을 듣게 됐다.

아이폰이 조만간 중저가형 모델을 내놓을 거라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삼성전자가 위기감을 느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모습은 2005년 '모토로라 레이저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 2005년 '모토로라 레이저' 열풍과 삼성전자의 대응

지금 삼성전자 내부에 '모토로라 레이저 열풍'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필자에게 '모토로라 레이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해외 다큐멘터리 채널의 광고를 통해 먼저 접한 '레이저'는 필자에게 휴대폰이 더 이상 '전자기기'가 아니라 '패션'으로 변신할 것이라는 힌트를 줬다. 여러 경로를 통해 삼성전자 측에 "모토로라 레이저가 국내 출시되면 충격이 클 것이니 대비가 필요하지 하지 않겠느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지만 닿지 않았다.

이윽고 '모토로라 레이저'가 국내 출시되자 돌풍이 휘몰아쳤다. 춘추전국시대 같던 당시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2위까지 껑충 뛰어오를 만한 디자인은 국내에도 먹혔다. 삼성전자는 물론 LG전자, 스카이 등은 현장 분위기를 무시하다 이런 움직임을 뒤늦게 깨닫고 신제품 개발에 착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다양한 색상까지 출시되면서 충격은 점점 더 커졌다. 그렇게 2년여 동안 '모토로라 레이저' 열풍은 국내에 몰아쳤다.

'모토로라 레이저'가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뒷이야기도 언론에 보도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휴대폰을 금속으로 만드는 건 금물이었다. 안테나와의 간섭 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한 안테나가 등장했다. 국내 중소기업이 개발한 것이었다. 이 기업은 삼성전자 등 국내 휴대폰 메이커와 접촉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했다. 이 안테나는 나중에 모토로라에 납품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스카이 등은 '모토로라 레이저'를 따라하거나 넘어서겠다며 폴더형 휴대폰은 물론 초슬림 휴대폰 등을 내놨다. 그러나 소비자 정서에 무관심했던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기능적으로 국산 휴대전화에 훨씬 못미치는 레이저가 왜 세계적 인기를 끄는지 결국 파악하지 못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레이저를 따라 잡은 것은 몇 년 뒤였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애플이 아이폰 출시 준비를 마쳤을 때였다.

◇ 17년 역사 아이폰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감성'과 '상상력'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은 현재 15까지 나왔다. 모든 세대의 아이폰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감성’과 ‘상상력’이다. 아이폰의 개념은 "지금의 기술이라면 휴대전화에 PDA 기능을 넣을 게 아니라 차라리 모든 기능이 가능한 PC를 넣어버리고, 화면에다 아예 다이얼을 넣으면 어떨까"라는 데서 시작했다.

스티브 잡스는 2007년 1월 "현재의 기술 발전 속도라면 출시 전까지 모든 기능을 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만든 것이다. 여기에 더해 PC처럼 휴대폰도 OS를 업데이트 한다는 개념을 처음 선보이면서 패러다임을 바꿨다.

PC 같은 기능을 가진 휴대폰은 '스마트폰'으로 불리며 상상하던 일들을 실제 가능케 했다. '앱(App)' 탑재를 가능하게 하면서 새로운 거대한 시장까지 만들어 냈다. 2009년 구글이 안드로이드 OS '컵케이크'를 내놓으면서 애플 아이폰과 경쟁을 시작했지만 따라잡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구글 안드로이드 OS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던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애플 아이폰과 경쟁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자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아이폰의 기술을 따라잡을 수 있었지만 ‘창의성’과 ‘감성’은 결국 따라잡지 못했다. 17년이 지난 지금 LG전자를 비롯해 세계의 수많은 휴대폰 브랜드는 휴대폰 시장에서 철수했다. 삼성전자가 남았지만 2005년 '레이저 돌풍' 때와 마찬가지 행보를 보일 뿐이다. 카메라 성능 등 '기술적 우수성'을 자랑하면서 경쟁 우위를 차지하려 계속 노력 중인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레이저 돌풍' 때처럼 아이폰을 영영 따라잡지 못할 게 자명하다.

◇ '천재'가 해결할 수 있지만…없다면 다른 방법 찾아야

그렇다면 삼성전자가 아이폰의 아성에 도전하고 나아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있긴 하지만 현 체제로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바로 고(故) 이건희 회장이 2003년 말한 '천재론'이다. "앞으로는 1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릴 것"이라는 전망은 21세기 세계 경제 패러다임을 관통하는 말이다. 테슬라모터스와 스페이스X의 앨런 머스크, 비트코인의 사토시 나카모토 등을 떠올리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문화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말한 '천재'를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선 '천재'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 자체가 드물다. 대부분의 기업이 학력과 비즈니스 경험으로 인재를 찾기 때문이다. 소위 '영재교육', '천재교육' 등을 논하며 자랑하는 기관들에도 공부를 잘하는 수재는 많지만 천재는 찾아보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적한 '사교육 카르텔'이 우리 사회를 사실상 지배하면서 '천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천재'를 찾을 수 없다면 삼성전자가 애플을 이기는 건 불가능한 걸까? 대안은 있다. 삼성전자에도 세계적으로 우수한 인재가 무수히 많다. 이들 가운데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인재,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비전을 가진 인재보다 기술 역량이 우수한 인재, 마케팅 감각이 뛰어난 인재들이 더 인정받는 문화를 바꾸면 된다.

애플 아이폰을 넘는다는 건, 마케팅 전략의 영역일 수 있다. 다만, 과거의 사례를 바탕으로 현재에 맞춰 짠 전략보다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기술과 문화, 유행의 예측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사람의 본능과 욕구는 선사시대 이후 지금까지도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역사학자와 철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