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해군, 함정 대폭 늘려야 하는데, 만들 업체 없어
"한국에 맡긴다면?"...한화오션·HD重에 '관심'
7.8조 때문에 다퉈?...'수백조원 시장 진출' 협력해야

※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자료입니다. Bing 이미지 생성기를 이용해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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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경제=전경웅 객원칼럼니스트/자유일보 기획특집부장] 지난 7일 경찰이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간의 소송전과 관련한 수사를 시작했다. 올해 수주전이 시작되는 7.8조 원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둘러싼 갈등이라고 언론들은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송전은 장기적 측면에서 봤을 때 다가올 거대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함께 깎아먹는 꼴이 될 전망이다.

◇ 한화오션, KDDX 기밀 유출 건으로 HD현대중공업 고발

한화오션은 지난 4일 “KDDX 기밀 유출 사건과 관련해 HD현대중공업 임원이 개입한 사실이 있다”면서 “수사해 처벌해 달라”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경찰은 7일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수사과에서 해당 사건을 담당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KDDX 사업은 2024년 사업 발주를 시작, 2030년까지 개발비 1조 2000억 원을 포함해 총 7조 8000억 원을 들여 해군의 차기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사업이다. 해당 사업에 대해 개념 설계는 한화오션,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수주한 바 있다.

이 구축함은 배수량이 6000t급으로 기존 이지스 구축함보다 작아 보이지만 다기능 위상배열레이더를 탑재하고 선체에 스텔스 설계를 적용해 부족한 이지스 구축함 전력을 확충하게 된다. 세간에서는 ‘미니 이지스 구축함’이라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지난 2012~2015년 사이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KDDX 사업과 관련해 당시 대우조선해양이 작성한 자료 등 군사기밀 12건을 불법 취득해 회사 내부에 공유한 것이다. 한화오션 측은 HD현대중공업이 사내에 비밀 서버까지 구축해서 기밀을 공유했고, 기밀을 유출할 때마다 윗선에 보고한 정황이 있다며 임원 연루설을 제기한 것이다.

사법당국은 지난해 11월 KDDX 기밀을 유출한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에 대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다만 형량은 집행유예였다. 방위사업청은 재판 결과를 토대로 지난달 27일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징계 수위를 ‘행정지도’로 결정했다. 임원이 연루되지 않았다는 점이 핵심이었다. 이 덕분에 HD현대중공업도 KDDX 사업에 입찰할 수 있게 됐다.

기밀 유출에 임원 또는 대표가 연루될 경우 방사청은 보다 강도 높은 징계를 내린다. 이때는 사업 입찰이 불가능 해진다. 이 같은 결과에 한화오션이 불복해 경찰에 고발을 한 것이다.

◇ 미 해군, 2045년까지 함정 대폭 증강하려 하지만…건조 역량 부족

미국은 2020년 10월 ‘미 해군 2045’라는 전력 증강 계획서를 통해 해군 함정을 2030년까지 355척, 2045년까지 500척 이상으로 대폭 증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미 해군 함정은 297척이었다. 세계 최강으로 불리는 핵추진 항공모함 11척에 다른 나라의 항공모함과 맞먹거나 능가하는 전력을 보유한 강습상륙함이 10척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급격히 함정 수를 늘리고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에게 언제 추월당하고 압도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그 결과 내놓은 전력 증강 계획서였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면서 이런 해군 전력 증강 계획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실제 지금까지 4년여 동안 미 해군의 함정 전력 증강은 지지부진했다.

이를 두고 좌우 진영을 떠나 많은 문제 제기가 나왔다. 지난해부터는 “차라리 한국과 일본에 해군 함정 건조를 맡겨 전력 증강 속도를 높이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1월 CNN은 “중국 인민해방군은 이미 보유 함정 수에서 미 해군을 추월했다”면서 “격차가 더 커지기 전에 차라리 한국과 일본에서 함정을 건조하고 미국이 이를 사들이자”는 주장을 전했다.

CNN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함정 건조 속도에 주목했다. 미국이 함정 1척을 건조할 동안 중국은 3척을 건조한다고 방송은 지적했다. 방송은 “하지만 미국은 이런 중국의 함정 건조 속도를 따라 잡을 역량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에서 건조한 함정은 중국 해군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해외 군사전문가의 주장을 소개했다.

호주 미국연구센터 블레이크 허징어 연구원과 인도·태평양사령부 통합정보센터 국장 출신 칼 슈스터는 방송에 한국과 일본이 건조한 함정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중국 해군을 상대하는데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 법이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20년 ‘존스법’을 제정했다. 미국에서 건조하거나 개조한 뒤 미국인이 소유하고 미국 국적 선원을 태운 선박만 미국 항만 간 운항이 가능하도록 했다. 다른 연방법에서도 미 해군 및 해안경비대 함정은 해외 기지를 모항으로 삼지 않을 경우 해외에서 건조·수리를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방송도 미 해군 함정 건조를 한국과 일본에 맡기는 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매년 14~15척의 함정 건조를 맡고 있는 미국 조선산업 종사자가 약 40만 명이다. 이들의 일자리 문제까지 걸려 있다 보니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측면도 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닉 차일즈 선임연구원은 “한국과 일본에 해군 함정 건조를 맡기기보다 두 나라로부터 건조 능력을 배우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美 커뮤니티 '레딧' 캡쳐
ⓒ 美 커뮤니티 '레딧' 캡쳐

◇ 미 현행법 장벽 있지만…미 해군 관계자부터 언론까지 한국 조선에 관심

하지만 해당 보도 이후인 2023년 2월 미 해군의 수상함 전력 조달 및 유지를 책임지는 ‘해상체계사령부(NAVSEA)의 톰 앤더슨 제독이 방한했다. 앤더슨 제독은 엄동환 방위사업청장을 만난 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HJ중공업(구 한진중공업) 등 국내 조선업체를 찾았다. 당시 그는 “세계적 수준의 조선업체를 찾으러 다녔는데 여기에 있었다”면서 “이번 방한이 상호 이익이 되며 앞으로 업무에서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앤더슨 제독의 방한이 미 정치권에 변화를 주지는 않았지만 세간의 여론을 상기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미국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는 파워포인트 파일 하나가 올라왔다. 미 해군 정보국(ONI)에서 작성한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과 미 해군의 전력 격차’라는 그래픽을 담은 파일이었다. 이 파일을 보면, 중국 조선소 생산능력은 2325만 GT(총톤수)인 반면 미국은 10만 GT가 채 되지 않았다. 230배 이상의 차이였다.

함정 건조 역량뿐만 아니라 건조 비용도 문제로 떠올랐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이 향후 주력으로 삼으려는 055형 구축함은 미 해군의 이지스 순양함과 이지스 구축함에 맞서기 위해 만든 것이다. 180m 길이에 만재배수량이 1만 2000~1만 3000t으로 추정된다. 능동형위상배일레이더(ASEA) 등 센서 성능은 미지수이지만 탑재하고 있는 무장은 제원 상으로 상당히 강력하다. 총 112셀의 수직발사기(VLS)에 다양한 대함·대공미사일을 탑재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이 55형 구축함을 8척 건조했고, 8척을 추가로 건조할 예정이다. 중국이 이 구축함을 8척 건조하는데 들인 시간은 불과 3년이었다.

미 해군의 타이콘테로가 이지스 순양함 외에 여기에 맞먹을 만한 군함은 한국 해군의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과 일본 해상자위대의 마야급 이지스 구축함이다. 두 구축함 모두 미국 구축함보다 건조비도 훨씬 저렴하다. 미 해군의 주력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은 척당 건조비가 약 22억 달러다. 반면 세종대왕급은 9억 2500만 달러, 마야급은 12억 달러 가량이 든다. 뿐만 아니라 건조 시간도 미국에 비해 훨씬 짧다. 게다가 세종대왕급은 VLS를 128셀이나 장착하고 다양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어 타격력에서도 압도한다.

◇ 미 해군 원하는 군함 건조 역량 갖춘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지난해 12월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다시 미 해군 함정 문제를 지적했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미중 간의 무력 충돌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미국은 항공모함 2척, 순양함과 구축함 20여 척을 잃고, 중국은 50척 이상의 구축함과 호위함을 잃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중국은 손실한 함정을 빠르게 대체할 수 있어 장기전이 되면 중국이 이긴다는 결론이 나왔다.

미 의회예산국(CBO)의 에릭 랩스는 “지난 2년 동안 중국은 구축함과 순양함 17척을 증강한 반면 미국은 같은 수의 함정을 건조하는데 6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예산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따랐다. 미 의회조사국(CRS)의 로널드 오루크 분석가, CSIS의 방산전문가 신시아 쿡 박사 등은 미 해군 전력 증강에 한국 조선업체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처럼 미 해군은 현재 미국의 선박 건조 및 유지 보수 역량 문제고 고민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 전문가들은 이런 고민을 해결할 방안으로 한국 조선업체 활용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조선업체 가운데 미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을 비롯해 연안 전투함을 건조할 능력을 갖춘 곳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뿐이다. 연안 전투용 고속정은 HJ중공업도 건조할 수 있다.

올해 11월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미 해군 전력 증강은 정해진 순서다. 즉 미 해군 함정 건조라는 시장이 열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시장 규모는 우리나라 해군이 발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미 의회와 미 해군, 안보전문 싱크탱크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2045년까지 500척 이상의 함정을 갖춘다면, 그 시장 규모는 수백조 원에 달할 수 있다.

우리나라 조선업체는 군수지원함과 소형 호위함, 재래식 잠수함 등이기는 하지만 이미 해외에 군함을 수출한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에다 정부의 ‘K-방산 수출’ 지원 등이 있으면 미국 시장 진출을 시도해볼 수 있다. 만약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7.8조 원대 KDDX 사업을 두고 피 튀기는 싸움을 일단 뒤로 하고, ‘컨소시엄’을 맺어 미국 해군 함정 시장을 두드린다면 ‘K-방산 수출’의 신화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