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age by macrovector on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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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경제=여평구 대중문화평론가] 세계 문화와 영화 산업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미국 할리우드의 상황이 심상치않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배우들이 배우와 작가들의 권리를 보장하라며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몸값을 자랑하는 그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5월부터 진행된 미국 작가조합의 파업에, 7월에는 미국의 배우, 방송인 노동조합이 동참했다.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 파업에 동참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시위 현장에 직접 참가한 배우들도 적지않다. 이들이 생계(?)를 내려놓고 파업에 나선 이유는 바로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업체들과 AI 때문이다.

이번 할리우드 파업에서 가장 큰 이슈는 OTT업체와 배우, 작가들의 수익 배분이다. OTT업체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배우와 작가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너무나도 빈약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배우조합과 작가조합은 여러차례 파업을 통해 재상영, 재방영 등에 대한 권한을 획득했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게됐다.

하지만 지난 2020년부터 3년여 동안 문화콘텐츠 제작 및 소비 환경이 달라졌다. 코로나로 인해 극장 상영이 감소했고, 이에 대한 반사이익을 넷플릭스와 같은 OTT업체들이 얻었다. OTT업체들은 푼돈에 가까운 재상영분배금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시청자들에게 제공해 막대한 이익을 가져갔다. 작가 조합과 배우 조합은 콘텐츠의 사용량에 비례해 정당한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 Image by iuriimotov on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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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쟁점은 바로 AI다. 기술의 발전으로 AI는 인간의 거의 모든 영역을 대체하고 있다.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창작의 영역에도 AI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AI는 배우들의 외모와 목소리까지 학습해 사용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는 배우들의 역할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AI가 배우들의 외모와 목소리는 물론 그 능력까지 학습한다면 제작사에서는 당연히 AI를 사용할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AI는 주연배우는 물론 엑스트라 배우들의 자리까지 대체할 것이다. 배우 뿐만아니라 작가들의 글도 마찬가지다. AI가 글을 쓰고 AI가 연기하는 콘텐츠. 결국 사람은 영화 제작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물론 거액의 몸값을 자랑하는 할리우드 톱스타들의 파업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할리우드는 여러차례 파업을 통해 제작현장에서의 부조리를 개선해왔다. 할리우드가 과거에 벌어졌던 노동력 착취와 인권유린, 열악한 제작환경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세계 영화의 중심이 될 수 있었을까?

ⓒ Image by pikisuperstar on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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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콘텐츠 시장의 중심인 미국에서 벌어지는 이번 파업이 남의 나라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한류가 이미 아시아를 넘어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말이다. K POP, 영화, 드라마 등등 한류가 스며든 영역은 다양하다. 세계적인 OTT업체들은 한국의 콘텐츠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16년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했을때 필자는 한국 문화콘텐츠 산업의 명과 암을 예측했다. 기존의 문화콘텐츠기업이나 방송국이 담아낼 수 없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빛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킹덤'은 한국 사극의 세계적인 성공 가능성을 봤고, '오징어게임'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대한민국 대표 문화콘텐츠가 되었다.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이들 콘텐츠들은 여전히 먼지 가득한 창고 속에 갇혀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동시에 한국콘텐츠의 값싼 유출도 우려했다. 상영료의 비율로 협상에 들어가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협상의 근거 자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오징어 게임'의 경우 제작비 200억원을 들여 1조원대 수익(추정치)을 거뒀지만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황동혁 감독이 추가로 보상받을 길은 없었다.

'오징어게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콘텐츠 제작사들은 대부분 모든 지적재산권을 넷플릭스에 넘긴 상태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큰 금액일지도 모르지만 넷플릭스가 이 콘텐츠를 활용해 벌어들일 수익을 감안하면 합리적인 금액일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AI 논란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류와 한국문화콘텐츠의 성공에 도취돼 OTT대기업과 AI가 산업의 기반을 뒤흔들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성공의 단맛만을 생각하기엔 후폭풍의 결과가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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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을 보호하고, 콘텐츠 사용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자리잡으면서 양질의 콘텐츠들이 생산됐고, 아울러 산업의 규모도 커졌다. 창작자, 생산자의 권리가 보호되지 않으면 양질의 콘텐츠가 나오기는 어렵다.

할리우드 배우-작가조합의 파업을 돈많은 '귀족노조'의 배부른 투정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OTT기업이 구매한 한국콘텐츠의 판권과 그 판권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AI가 만들어내는 콘텐츠. 대한민국 콘텐츠산업의 미래를 OTT대기업과 AI에 맡겨도 되는가에 질문을 던질 때이다.

■ 여평구 대중문화평론가

-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 前 이슈데일리 취재부장
- 現 대중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