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레 논산공장을 방문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 이정식 장관 페이스북 계정
빙그레 논산공장을 방문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 이정식 장관 페이스북 계정

[월드경제=유상석 편집국장] 하늘이 뚫린 것 같은 어마어마한 집중호우로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하더니, 살인적인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위험한 날씨다.

각 부처 장관들의 현장 방문이 잦아진 게 바로 이 위험한 날씨가 시작되던 7월 중순 무렵부터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장·차관급 인사들에게 "집중호우가 올 때 사무실에 앉아만 있지 말고, 현장에 나가 상황을 둘러보라"고 주문한 것도 있었고, 장관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 같은 주문이 타당하다고 여겼을 터.

그렇게 현장을 방문한 장·차관들 가운데 특히 필자의 눈에 띈 인물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다. ▲7. 11. 경기 안산 대부도 소재 E-9 외국인근로자 고용 어업 사업장 ▲7. 18. 현대건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주상복합 사업현장 ▲같은 날 영등포구 문래동 기계·부속제품 제조업체 ▲7. 19. 서울 강남구 소재 콘크리트 제조업체 현장 ▲7. 20. 경기 안양시 소재 중소 건설사 복합건물 건설 현장 ▲7. 27. 빙그레 논산공장 ▲7. 31. 쿠팡 동탄물류센터 등, 폭우 또는 폭염과 관련한 안전조치를 점검하기 위해 이 장관이 직접 현장을 시찰한 게 올해 7월 들어서만 모두 7차례다.

'장관이 근로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구나'라는 생각 이전에,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현장들을, 고용노동부 장관이 굳이?"

재난에 대한 예방활동과 대책 수립 분야에서는 고용노동부보다는 행정안전부가 먼저 떠오르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행정안전부 출입기자로 근무했던 과거 기억을 되짚어 봐도, 재난 분야 주무 부처는 행정안전부였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은 행정안전부 장관이 맡게 되며, 재난이 우려되거나 발생했을 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어쨌든 고용노동 관련 정부부처의 장이 근로자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건데, 잘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평가가 있을까. 이런 평가에도 필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회원제 대형 마트인 코스트코 하남점의 20대 직원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사실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시기는 7월 중순. 이 장관이 현장방문을 활발히 하던 기간이다. 근로자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실, 빈소를 찾은 대표이사가 막말을 한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일으켰는데도 이 장관은 현장을 방문하지 않았다.

이 장관이 대신 방문한 곳 중 잘 알려져 있는 업체는 빙그레 논산공장과 쿠팡 동탄물류센터.

빙그레 논산공장은 집중호우로 아이스크림 콘 제조공장 외벽 일부가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다행히 별다른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빙그레 측은 "제품 생산에 별다른 지장이 없다"고 전해왔다. 

쿠팡의 경우, 혹서기에는 법정 휴게 시간 외에  추가적인 휴게 시간을 제공하고, 주기적인 온습도 관리를 하고 있으며, 정기적인 온열 질환 예방 교육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쿠팡 노조가 근무환경 열악 등을 이유로 오늘(1일) 하루 동안 파업을 진행한다고 선언했지만, 실제 파업 참여 인원은 3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런 내용들을 정리해보면, 이 장관이 문제 있는 현장은 회피한 채 굳이 '잘하고 있는' 현장만 시찰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사람이 죽은' 코스트코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굳이 둘러보지 않아도 되는 현장인가. 빙그레와 쿠팡은 굳이 장관이 직접 시찰해야 하는 현장인가. 이 바쁜 와중에 '장관님 수행'에 나서야 하는 빙그레·쿠팡 임직원들에게는 무슨 민폐인가. 

이제 8월이다. 무더위는 이어지고 있고, 온열질환자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행안부 외에 고용부가 해야할 일이 많다. 8월에는 고용부 장관의 '보여주기 식 시찰'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