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경제=유상석 편집국장] '음주가무의 계절'이라면, 예전에는 겨울, 그 중에서도 12월을 떠올렸습니다만, 이젠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6월도 음주가무의 계절입니다. 지금쯤 대학가는 기말고사 준비 때문에 바쁠 겁니다. 그리고 기말고사가 끝난 대학가 술집에서는 술에 취한 대학생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겠지요. 나름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뒤 처음으로 치러지는 1학기 기말고사니, 아마도 더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 7~8월이 되면 휴가철입니다. 휴가 기간이기 때문에 또 어쩔 수 없이(?) 한 잔 합니다. 가을이 되면 또 추석 명절에 친지들을 만나 한 잔, 단풍 구경 갔다가 한 잔들 하실 테고요. 지난 봄에는 또 꽃구경 갔다가 한 잔들 하셨을 테지요.
이 밖에, 직장에서의 회식이라거나 비즈니스 관련 술자리는 딱히 계절을 가리지 않습니다. "아... 어제 너무 마셨나..."와 같은 탄식, 계절을 가리지 않고 해 본 경험 한 번 씩 있지 않으신지요.
이런 탄식과 함께 떠오르는 숙취해소 방법들이 많이 있겠습니다만, 이번에는 특별히 '여명808'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이게 무려 사법시험에도 등장한 물건이거든요.
◇ 7전8기는 아니고 807전 808기... 그래서 '808'
우리나라 숙취해소음료의 효시는 1992년 출시된 CJ제일제당의 '컨디션'이라고 합니다.
여명808이 등장한 건 훨씬 후의 일입니다. 개발기간은 1993년부터 1996년까지 4년. 그리고 1998년에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여명808을 개발한 인물은 발명가로도 알려져 있는 (주)그래미 남종현 회장. 간경화를 앓고 있는 동생을 위해 동의보감을 파고 또 팠다고 합니다. 온갖 약초라는 약초는 다 가져다 넣어 봤겠죠. 어쩌면 여명808에서 한약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오리나무와 마가목의 잎·줄기·뿌리를 추출했더니 몸에 쌓인 알코올 배출을 돕고, 숙취해소 효과가 있다는 결과를 얻어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807차례 실패를 겪었고, 808번째 도전에서 결국 성공했다는군요. 그래서 808이라는 숫자가 붙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쯤 되면 7전 8기는 우습겠구나 싶습니다.
그렇게 '술꾼들의 아침'에 도전장을 내민 여명808은 커다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킵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 때문에 놀라서 술을 깬다", "한 캔 들이키니 구토가 나온다. 몸 속 모든 것을 비워내니 술이 깬다" 이런 농담 반 진담 반의 평가도 있긴 합니다만, 어쨌든 '바이럴 마케팅(입소문을 통한 광고 방법)'에는 성공한 듯 보이고요. 편의점·슈퍼마켓·대형 마트 등의 점포에서 손님들이 자주 찾는, 그래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제품이 됐습니다.
◇ '음주전후 숙취해소' 이 8글자가 뭐라고...
"숙취해소 (808) 여명 (808)
음주전후 숙취해소
마시자 (808) 해외특허 (808)
정말 좋아요 여명808"
북한 동요 <뽀뽀>를 개사한 이 CM송, 참 오래도 우려먹습니다.
하지만 같은 광고를 줄기차게 내보내는 광고주의 입장도 이해가 됩니다.
"제작비가 적게 들잖아!" 이런 차원이 아니고요.
'음주전후 숙취해소'라는 이 8글자의 표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기까지 참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거든요.
여명808은 헌법재판소에 다녀온 음료입니다.
의약품이 아닌 식품에는 '음주전후' 또는 '숙취해소'라는 문구를 넣을 수 없다는 식약청(지금의 식약처) 고시가 있었습니다. 술 마시고 난 뒤에 숙취 해소를 돕기 위해 807전 808기 만에 만들어 낸 발명품인데 '음주전후 숙취해소' 표현을 못쓰다니요.
남종현 당시 사장은 이런 내용의 식약청 고시가 헌법이 보장하는 영업의 자유와 특허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는데요, 이런 주장이 헌법재판소에서 먹혔습니다.
결정요지, 직접 보시죠.
식품등의표시기준 제7조 별지1 식품등의세부표시기준 1. 가. 10) 카) 위헌확인
99헌마143, 2000. 3. 30.
【결정요지】
위 규정은 음주로 인한 건강위해적 요소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입법목적하에 음주전후, 숙취해소 등 음주를 조장하는 내용의 표시를 금지하고 있으나, “음주전후”, “숙취해소”라는 표시는 이를 금지할 만큼 음주를 조장하는 내용이라 볼 수 없고, 식품에 숙취해소 작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표시를 금지하면 숙취해소용 식품에 관한 정확한 정보 및 제품의 제공을 차단함으로써 숙취해소의 기회를 국민으로부터 박탈하게 될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숙취해소용 식품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와 시도를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위 규정은 숙취해소용 식품의 제조ㆍ판매에 관한 영업의 자유 및 광고표현의 자유를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하여 침해하는 것이다. 특히 청구인들은 “숙취해소용 천연차 및 그 제조방법”에 관하여 특허권을 획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위 규정으로 인하여 특허권자인 청구인들조차 그 특허발명제품에 “숙취해소용 천연차”라는 표시를 하지 못하고 “천연차”라는 표시만 할 수밖에 없게 됨으로써 청구인들의 헌법상 보호받는 재산권인 특허권도 침해되었다.
그리고 이 판결은 사법시험 문제로 등장하게 됩니다.
정확히는 2010년 치러진 제52회 사법시험 헌법 문제로 출제됐지요.
이 문제는 당시 수험생들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았습니다. 헌법과 부속법의 조문, 이론과 판례, 헌정사까지 그렇지 않아도 공부할 내용이 많은데, 하다못해 이제 식약청 고시까지 시험 문제로 출제하느냐고. 이건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고 말이죠.
어쨌든 여명808은 '음주전후 숙취해소'라는 광고 문구를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도 그 광고는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