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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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경제=유상석 편집국장] '음주가무의 계절'이라면, 예전에는 겨울, 그 중에서도 12월을 떠올렸습니다만, 이젠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6월도 음주가무의 계절입니다. 지금쯤 대학가는 기말고사 준비 때문에 바쁠 겁니다. 그리고 기말고사가 끝난 대학가 술집에서는 술에 취한 대학생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겠지요. 나름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뒤 처음으로 치러지는 1학기 기말고사니, 아마도 더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 7~8월이 되면 휴가철입니다. 휴가 기간이기 때문에 또 어쩔 수 없이(?) 한 잔 합니다. 가을이 되면 또 추석 명절에 친지들을 만나 한 잔, 단풍 구경 갔다가 한 잔들 하실 테고요. 지난 봄에는 또 꽃구경 갔다가 한 잔들 하셨을 테지요. 

이 밖에, 직장에서의 회식이라거나 비즈니스 관련 술자리는 딱히 계절을 가리지 않습니다. "아... 어제 너무 마셨나..."와 같은 탄식, 계절을 가리지 않고 해 본 경험 한 번 씩 있지 않으신지요.

이런 탄식과 함께 떠오르는 숙취해소 방법들이 많이 있겠습니다만, 이번에는 특별히 '여명808'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이게 무려 사법시험에도 등장한 물건이거든요.

[사진=(주)그래미 제공]
[사진=(주)그래미 제공]

​◇ 7전8기는 아니고 807전 808기... 그래서 '808'

우리나라 숙취해소음료의 효시는 1992년 출시된 CJ제일제당의 '컨디션'이라고 합니다. 

​여명808이 등장한 건 훨씬 후의 일입니다. 개발기간은 1993년부터 1996년까지 4년. 그리고 1998년에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사진=(주)그래미 제공]
[사진=(주)그래미 제공]

​여명808을 개발한 인물은 발명가로도 알려져 있는 (주)그래미 남종현 회장. 간경화를 앓고 있는 동생을 위해 동의보감을 파고 또 팠다고 합니다. 온갖 약초라는 약초는 다 가져다 넣어 봤겠죠. 어쩌면 여명808에서 한약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오리나무와 마가목의 잎·줄기·뿌리를 추출했더니 몸에 쌓인 알코올 배출을 돕고, 숙취해소 효과가 있다는 결과를 얻어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807차례 실패를 겪었고, 808번째 도전에서 결국 성공했다는군요. 그래서 808이라는 숫자가 붙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쯤 되면 7전 8기는 우습겠구나 싶습니다.

​그렇게 '술꾼들의 아침'에 도전장을 내민 여명808은 커다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킵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 때문에 놀라서 술을 깬다", "한 캔 들이키니 구토가 나온다. 몸 속 모든 것을 비워내니 술이 깬다" 이런 농담 반 진담 반의 평가도 있긴 합니다만, 어쨌든 '바이럴 마케팅(입소문을 통한 광고 방법)'에는 성공한 듯 보이고요. 편의점·슈퍼마켓·대형 마트 등의 점포에서 손님들이 자주 찾는, 그래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제품이 됐습니다. 

[이미지=여명808 TV 광고 캡쳐]
[이미지=여명808 TV 광고 캡쳐]

◇ '음주전후 숙취해소' 이 8글자가 뭐라고...

"숙취해소 (808) 여명 (808) 
음주전후 숙취해소
마시자 (808) 해외특허 (808)
정말 좋아요 여명808"

북한 동요 <뽀뽀>를 개사한 이 CM송, 참 오래도 우려먹습니다.

​하지만 같은 광고를 줄기차게 내보내는 광고주의 입장도 이해가 됩니다.

"제작비가 적게 들잖아!" 이런 차원이 아니고요.

'음주전후 숙취해소'라는 이 8글자의 표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기까지 참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거든요.

[사진=헌법재판소 홈페이지 캡쳐]
[사진=헌법재판소 홈페이지 캡쳐]

여명808은 헌법재판소에 다녀온 음료입니다. 

​의약품이 아닌 식품에는 '음주전후' 또는 '숙취해소'라는 문구를 넣을 수 없다는 식약청(지금의 식약처) 고시가 있었습니다. 술 마시고 난 뒤에 숙취 해소를 돕기 위해 807전 808기 만에 만들어 낸 발명품인데 '음주전후 숙취해소' 표현을 못쓰다니요.

남종현 당시 사장은 이런 내용의 식약청 고시가 헌법이 보장하는 영업의 자유와 특허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는데요, 이런 주장이 헌법재판소에서 먹혔습니다.

결정요지, 직접 보시죠.

​식품등의표시기준 제7조 별지1 식품등의세부표시기준 1. 가. 10) 카) 위헌확인

99헌마143, 2000. 3. 30.

【결정요지】

위 규정은 음주로 인한 건강위해적 요소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입법목적하에 음주전후, 숙취해소 등 음주를 조장하는 내용의 표시를 금지하고 있으나, “음주전후”, “숙취해소”라는 표시는 이를 금지할 만큼 음주를 조장하는 내용이라 볼 수 없고, 식품에 숙취해소 작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표시를 금지하면 숙취해소용 식품에 관한 정확한 정보 및 제품의 제공을 차단함으로써 숙취해소의 기회를 국민으로부터 박탈하게 될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숙취해소용 식품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와 시도를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위 규정은 숙취해소용 식품의 제조ㆍ판매에 관한 영업의 자유 및 광고표현의 자유를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하여 침해하는 것이다. 특히 청구인들은 “숙취해소용 천연차 및 그 제조방법”에 관하여 특허권을 획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위 규정으로 인하여 특허권자인 청구인들조차 그 특허발명제품에 “숙취해소용 천연차”라는 표시를 하지 못하고 “천연차”라는 표시만 할 수밖에 없게 됨으로써 청구인들의 헌법상 보호받는 재산권인 특허권도 침해되었다.

[사진=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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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판결은 사법시험 문제로 등장하게 됩니다.

정확히는 2010년 치러진 제52회 사법시험 헌법 문제로 출제됐지요.

이 문제는 당시 수험생들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았습니다. 헌법과 부속법의 조문, 이론과 판례, 헌정사까지 그렇지 않아도 공부할 내용이 많은데, 하다못해 이제 식약청 고시까지 시험 문제로 출제하느냐고. 이건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고 말이죠.

[이미지=여명808 TV광고 캡쳐]
[이미지=여명808 TV광고 캡쳐]

어쨌든 여명808은 '음주전후 숙취해소'라는 광고 문구를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도 그 광고는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