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영란 기자 

[월드경제신문 이영란 기자] 이언 플레밍이 집필한 스파이 제임스 본드의 소설 시리즈는 총 14편으로 1953년 처음 공개 때부터 큰 사랑을 받은 소설이다. 줄거리는 위험에 처한 국가를 영국의 스파이 007 제임스 본드가 뛰어난 지략과 최신무기를 사용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내용이다.

영화로 처음 제작된 1962년은 소련과의 냉전이 고조되던 시기라 더욱 화려한 액션과 처음 공개되는 최신장비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시대상을 반영한 미모의 ‘본드걸’과 전방의 경기관총, 후방의 연막탄 발사기, 비상 탈출이 가능한 조수석 등의 장치를 갖춘 ‘본드카’이다.

본드카는 숀 코너리가 주인공으로 나온 1964년 영화 ‘007 골드핑거’에서 처음 나왔는데 날개 모양의 엠블럼이 눈에 띄는 영국 스포츠카 브랜드 애스턴마틴의 대표모델 DB5였다. 이 후에도 선더볼 작전, 골든아이, 네버다이, 카지노 로얄, 스카이폴 등 숱한 007 시리즈에 등장해 제임스 본드에 버금가는 눈길을 모으며 인기를 끌었다.

이 후 애스턴 마틴은 본드카 이미지를 굳건히 하며 애스턴 마틴과 007 영화 시리즈의 파트너십 50주년을 기념하는 모델로 DB10을 10대 한정 생산했다. DB10은 영화 007 스펙터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모델로 007 스펙터 영화 시사회에서 영화감독이 영화 출연진 중 가장 먼저 캐스팅한 모델이라고 밝혀 이슈가 되기도 했다.

▲사진=이영란 기자 

이번 카스토리에서는 본드카로 알려진 고급스러우면서도 화려한 영국 스포츠카의 자존심 애스턴 마틴 브랜드에 대해 알아보고 애스턴 마틴의 숨은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애스턴 마틴은 1913년 라이오넬 마틴과 로버트 뱀포드가 설립한 고급 수제 스포츠카 회사다. 회사명은 유명 사이클 선수기도 했던 라이오넬 마틴이 애정을 가지고 참가하던 유명한 힐클라임 레이스의 명칭인 애스턴 클린턴 힐클라임(Aston Clinton Hillclimb)에서 ‘애스턴’과 창업자 라이오넬 마틴에서 ‘마틴’을 결합해 완성됐다.

애스턴 마틴 창립 초기에는 다른 차량들을 개조해 판매하는 튜닝 회사였지만 수익 안정화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1915년부터 직접 차를 만들어 팔게 되면서 애스턴 마틴이란 이름을 붙인 자동차를 생산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판매가 어렵게 되자 모든 회사 장비들을 매각하고 다음 기회를 노린다.

전쟁이 끝나자 다시 회사를 재건하고 차량을 생산하였으나 당시 상황이 고가의 스포츠카 판매가 어려워 1924년 파산, 1926년에 공장마저 문을 닫게 된다.

이 때 애스턴마틴의 잠재력과 퍼포먼스를 좋아하던 투자가들이 삼삼오오 모여 애스턴 마틴 모터스로 새출발하는 투자를 단행한다. 하지만 기본정비를 직접 하는 영국 자동차문화와 전쟁 이후 어려운 경제상황은 고성능 스포츠카의 설 자리가 없었다.

결국 1947년 애스턴마틴 모터스는 데이비드 브라운(David Brown)에 의해 매각됐다. 데이비드 브라운과의 만남은 지금의 애스턴마틴을 존재하고 부활하게 하는 운명적인 만남였다. 이런 이유로 애스턴마틴은 모델명에 데이비드 브라운의 이름 이니셜을 넣어서 DB+숫자로 작명하고 있다.

애스턴마틴의 명성이 높아진 건 1958년 런던에서 개최된 모터쇼에서 DB4를 발표한 이후이다. DB4는 클래식하지만 파격적인 디자인과 강력한 고성능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단번에 끌면서 단종되기까지 약 1100여대가 팔렸다. 이 판매기록은 20세기의 애스턴마틴 역사상 최고판매 기록이고, 애스턴마틴이 자동차회사로 입지를 갖추는데 큰 힘이 됐다.

▲사진=이영란 기자 

데이비드 브라운은 개인용(소장용) 스포츠카 제작에 관심이 높았기 때문에 수제 스포츠카를 1000여대나 생산할 의사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높아진 인기는 애스턴마틴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고, 007 제임스본드의 본드카로 알려진 DB5까지 생산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었다.

이후 애스턴마틴은 지속적으로 모델을 생산했지만 세계경제 상황에 영향을 받으며 새로운 주인을 다수 만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애스턴마틴의 고성능 스포츠카 매력을 눈여겨본 포드가 1987년 인수하면서 기술 안정화 작업을 통해 조금 더 내실있는 자동차 브랜드로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포드는 인수 이후 가장 성공한 모델인 DB7를 더 팔려는 욕심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고급 스포츠카를 생산하면서 생산단가와 제작기간을 낮추기 위해 포드는 자회사였던 볼보와 퍼블릭 브랜드의 부품을 함께 사용하면서 애스턴마틴 고유의 차별화된 럭셔리 감성에 큰 타격을 받으며 부침을 겪게 된다.

다른 스포츠카 브랜드인 페라리·람보르기니·포르쉐에 비해 2% 부족한 퍼포먼스를 차별화된 디자인과 럭셔리한 감성으로 채우는 브랜드였기 때문에 타격이 컸다.

현재 애스턴마틴은 시간을 거스르는 프리미엄 스포츠카의 이미지에 걸맞는 모델만 생산하며 절치부심하고 있다. 엔트리 스포츠카인 밴티지, 메인스트림 GT모델인 DB11, 플래그십 모델인 DBS 슈퍼레제라, 유일한 SUV 모델인 DBX 등으로 영국 스포츠카의 자존심을 지키며, 최근 개봉한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 본드카로 나온 DB5 모델로 본드카 이상의 클래식한 가치를 지켜가고 있다.

애스턴마틴도 2026년 이후에는 내연기관차 생산을 전면 폐지하고 전기차만을 생산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소비자가 기대하는 애스턴마틴 슈퍼카는 내연기관 엔진의 성능을 극한까지 구현한 모델이기에 2028년이라고 해도 고객이 원하다면 맞춤용 하이브리드 모델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오는 2026년 이후에 007 영화가 나온다면 DB5 모델이 아닌 맞춤형 하이브리드 애스턴 마틴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