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경제신문】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할 수 있도록 추위가 제 역할을 해주기를 기다리는 것. 세월 흘러도 후일 소중한 추억 떠올리며 행복한 시간 만끽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

◇거센 풍파 살아남은 인동초들

 올 겨울은 기상이변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도대체가 춥지를 않다. 겨울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소한’ 절기마저 무색할 정도로 푹한 이 겨울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 이대로라면 아마도 역사상 가장 춥지 않은 겨울로 기록될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가 ‘슈퍼엘니뇨’의 영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고 조상님들은 늘 말씀하셨다. 물론 비교적 덜 추우면, 추위 걱정을 하고 살아야 하는 서민들이 한 시름 덜 수 있어서 이로운 점은 있다. 그러나 겨울 추위를 기해서 생계를 이어야 하는 상인들이나 관련 산업의 종사자들은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 셈이다.

이렇게 기본적인 경제 구조가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리면 그 여파는 반드시 모든 국민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골고루 미칠 수밖에 없다. 가능할지 모르지만 뒤늦게라도 겨울 추위가 적당히 우리 곁에서 머물러주었으면 하는 한 켠의 바람이다.

무분별하게 환경이 파괴되고, 지나친 공업화로 인한 대기의 오염이나 폐수의 만연 등 그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학자들이 무진 애를 쓰고는 있지만, 확실한 대책이나 방비책을 제시하기는 요원한 일이고, 아무튼 원인이야 어떻든지 현대에 와서 어느 순간 불쑥 생겨난 이 괴물같은 기상이변으로 인해 우리 인간들이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새삼스러울지 모르지만 필자가 올 겨울에 기다리는 건 단순한 겨울의 추위 자체는 아니다. 아니 어찌보면 필자는 그냥, 겨울에 춥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부류에 속하는 편일지도 모른다. 복잡한 세상사는 떠나서 추우면 매사가 귀찮아지고, 스스로 굼떠져서 움직이기조차도 싫어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겨울다워야 한다면서 춥기를 기다린다면 그건 어쩌면 앞뒤가 안맞는 말이다.

필자가 기다리는 건 당연한 사실이 당연스레 이어지는 현실의 세상이다. 비비꼬이고 이상하게 뒤틀린 상황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순리가 펼쳐지는 현실을 바란다는 거다. 그리고 이 겨울의 이상기온이 바로 그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싫다는 거다. 살을 에는 바람과 더불어 추운 겨울이 지나야 파릇파릇 새 싹이 돋는 봄이 더욱 상큼하고 신선하게 느껴질 게고, 따스한 봄 햇살이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 아닌가?

그래야만 봄이 더욱 반갑고 돋아나는 새 순이 아름다울 테니까, 그렇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할 수 있도록 추위가 제 역할을 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꽁꽁 언 땅 속 깊이에서 오랫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뿌리들이 언젠가 돌아올 봄을 기다리듯이, 거센 풍파를 헤치고 살아남은 인동초들이 그 이름에 걸맞는 위상으로 새 봄의 전령사 노릇을 하듯이, 필자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마루턱에서 큰 소리로 새로운 소망의 노래를 부르게 될 날을 기다리고 싶은 것이다.

◇여유가 있었던 시절에 그리움

잃어버린 기다림에 대하여 아주 농밀한 대담처럼 독자들의 가슴을 헤집은 ‘피터 빅셀’의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라는 책을 기억한다. 그 책은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 상실에 대해 이야기했던 ‘책상은 책상이다’로도 널리 알려진 산문집이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스위스’의 유력 주간지 ‘슈바이처 일루스트리어테’지에 기고했던 칼럼을 모아 펴낸 것으로, 우리가 사는 사회와 일상의 평범한 단면을 포착해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특별한 순간과 삶에서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 것, 이 사회가 작동하는 이면의 원리 등에 대해 촌철살인을 날린다.

과학과 기술이 지금처럼 발전하기 훨씬 이전부터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답게 그가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이 저만치 앞서 있는 환경에서 하루하루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잊혀진, 또한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고, 사람과 시간을 조바심 없이 그저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풀어낸다.

사람 사이의 약속은 휴대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되고 날씨는 예보 기술로, 선거는 사전 조사로, 세상의 웬만한 일은 예측되며 그 예측이 맞아떨어지는 사회에서 점점 기다림은 줄고, 앞 일을 기대하는 설렘 또한 점점 없어져 가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서, 이를 저자는 자신이 자주 이용하는 기차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역에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부산스럽게 짐을 챙기고 초조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저자는 기다림을 잃은 우리네 모습을 발견한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기다림을 마주하게 된다. 어렸을 때는 키가 빨리 크기를, 크리스마스가 오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 본 기억이 있다. 자라서는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마음 졸이면서 기다렸고, 곧 태어날 아기와의 만남을 애타게 기다려 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하기 어려운 ‘미안해’라는 한 마디를 듣고 싶어하고, 소중한 사람이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다린다. 더 나이가 들어서는 다시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날도 많을 테고, 머지않아 다가올 또 다른 날들도 소중하게 기다리면서 살아간다.

생각해 보면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고, 의미 없이 살아온 적이 많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세월이 많이 흘러 나중에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한 시간을 가지도록,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야 한다.?그리고 이제부터 다가올 모든 순간들은 즐겁고 기분 좋은 기다림으로 가득하길 바래본다. 그렇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오면 좋겠다. 모두가 서로 사랑하는 세상이 오면 참 좋겠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기다리는 건 ‘행복’ 그리고 ‘사랑’이다.

필자의 이 바람은 큰 사랑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에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되어 가지를 뻗치는 게 사랑이라고 감히 필자는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랑이란 것은 관심을 갖지 않으면 결코 솟아나지 않는 정이다.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솟아나는 정이 아닌 것이다.

퍼낼수록 다시금 맑고도 그득하게 고여 오는 샘물, 우리들의 가슴 속에 있는 사랑이란 샘물을 자주, 그리고 되도록 많이 퍼내면서, 우리에게 깃을 내릴 영원한 기다림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하며 오늘을 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