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육인숙의 마음의 풍경

[월드경제/시사매일] 천사와 데이트를 했다. 때론 친구 같고 때론 나이를 잊고 언니처럼 느껴지는 아우와 더위에 하느작거리는 오후를 나눠 마셨다. 이십 오년 전에 공부에 미련이 남아 서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렵게 공부할 때 만난 아우였는데 어느 순간 연락이 끊어졌었다. 그런 아우가 작년 가을에 단풍처럼 나를 찾아왔다. 묘한 일은 나도 잊고 있던 아우가 자꾸 생각났던 즈음이었다. 그랬다. 늘 믿고 있었다. 만나야 될 사람들 사이의 허허한 거리와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운명이라면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 사람의 일이었다.

절로 유행가 가사가 읊조려지는, 왠지 파마한 조선의 여인 같은 덕수궁 돌담길은 오랜만에 만나는 옛 연인 같았다. 또닥또닥, 은근히 힘이 실리는 발소리가 커질 때마다 나이가 한 살씩 어깨 너머로 빠져나갔고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랫말이 되어 흐르는 우리의 모습이 보여 웃고 또 웃었다, 해야 할 일과 현실 그리고 나이도 까맣게 잊은 채.

한복 저고리에 뾰족구두를 신은 듯한 묘한 뉘앙스가 풍기는 이 정동길을 걸을 때마다 나는 흑백영화 속의 주인공이 마시는 한 잔의 추억과 잃었던 웃음이 되곤 한다. 변한 듯하면서도 은은하게 풍겨나는 옛 향취가 마음을 자극할 때마다 내게서도 곰삭은 종이 냄새가 났고 줄이 약간 풀려 둥둥거리는 첼로소리가 났다.

정동의 시립미술관은 놀이터 옆 미술관 같았다. 인류의 자취와 숨결이 범세계적으로 소통되고 있는 미술관을 지나면서 나는 잠시 뒤뚱거리며 아이들과 춤을 추고 있을 로댕의 토르소들을 상상해보았다. 그리고는 때때로 가난에 주춤거리는 나를 꺼내어 미술관 앞에 늘어선 이파리가 뾰족뾰족한 대왕참나무에 걸쳐두었다.

흐르기만 하는 역사가 잠시 멈추어 서서 허리를 펴는 것만 같은 정동길에도 유행의 바람은 다소곳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언젠가 휘황찬란하게 차린 고급 음식점에서 우아한 모습으로 서양요리를 먹는 나를 상상해본 적이 있었는데 이내 느끼한 기운이 목젖까지 그렁그렁했었다. 처음으로 먹어본 달큰 느끼한 까르보나라 맛이 꼭 그랬다.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 하는 아우에게 주파수를 맞추고 아이들이 스파게티 종류를 줄줄이 나열할 때 김치 생각을 했던 나를 잠시 잊으려했지만 역시 최고의 국소요리는 멸치국물에 양념장 팍팍 넣어 말은 잔치국수가 최고라는 생각을 했다.

점심을 먹고 정동극장 옆 카페의 나무그늘에 앉아 차를 마시며 나는 아우에게 아름다운 제안을 했다.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아 함께 여행을 시작해보자고. 힘들고 아팠고 소중했던 기억들이 뒤엉켜 시들어 있는 마음의 터앝에 물도 주고 청소도 하고 희망도 불어넣어 다시 꽃피게 하자고. 넘어지고 쓰러지면 서로 손잡아 일으켜주고 흔들릴 때마다 서로에게 버팀목도 되어주고 따끔한 죽비도 되고 스승도 되어주면서 남은 생 웃으면서 함께 걸어가자고.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아우는 마을 어귀에 있던 미류나무를 사랑했었다고 늘 말하곤 했었다. 그런 아우를 보면서 나는 아우의 마음속에 무언가가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유난히 눈이 맑은 아우가 바라보는 세상은 늘 미류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나는 그 미루나무를 빛 가운데로 불러내 생명을 불어넣자고 열변을 토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장만되는 보석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 때가 반드시 온다. 나는 아우에게 지금이 그때라고 말해주었다.

대왕참나무에 걸어두었던 내 마음을 아우는 보았던 것일까! 시립미술관 앞을 지나려는데 아우가 행복한 제안을 한다. 언니, 우리 로댕전 보고 갈까? 오, 얼마나 보고 싶었던가. 나는 얼른 걸쳐두었던 마음을 거두며 아우이 손을 잡아본다. 아우야 마음이 두 배인 우리는 참으로 부자고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렇지?


'신의 손' 로댕.

이틀 뒤면 끝나선지 사람들이 유난히 북적거리고 어수선했다. 그래도 감사한 시간이라 가능하면 마음눈 크게 뜨고, 무엇을 보고 기록할지 고요히 따라가자며 전시실로 들어갔다.

음악회 가는 일은 무지하게 행복한 일이지만 홀로 듣는 연주만 못하다. 연주가 보이기 시작하면 음악이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 귀만 열어놓고 연주하는 내내 난 거의 눈을 감고 있다. 그림은 더 그렇다. 눈이 생각을 정지시키고 마음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미술은 항상 어렵다.

청동시대와 세례 요한 · 신의 손 · 지옥의 문 · 깔레의 시민 · 발자크상 그리고 수많은 토르소와 여체의 나신을 스케치나 크로키한 소품들. 가히 '신의 손'이라고 할 만한 작품은 역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굴곡진 섬세한 근육선은 마치 살아있는 듯 생동감이 넘쳤고, 내리깔고 골똘히 생각하는 눈을 통해 수백 년을 산 조각가의 웅숭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어디선가 나를 투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자꾸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다. 다소 곳곳이 마모되기는 했으나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감동적이었다. 힘준 다리와 턱에 받친 팔의 힘줄은 금방이라도 일어나 내게 걸어올 것만 같아, 만약 그러면 꼭 안아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심에 가득한 얼굴에선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신의 아픔이 느껴져 바라보는 내내 가슴이 따끔거렸다.

아우는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로댕보다 그녀를 더 만나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나는 생이 어쨌든지 간에 그녀의 광기에 가까운 예술혼이 부러웠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끌로델의 애정결핍은 오히려 예술적 미로 승화되었으나 로댕에 대한 집착은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는 동력이 되고 말았다. 로댕을 능가할 정도로 탁월했던 그녀의 예술혼만을 한 움큼 담아왔다. 그녀의 결핍과 사랑과 예술혼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사람의 일이고 신의 섭리였는지는 감히 분석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그저 사랑스러웠다, 넋을 놓고 끌로델을 바라보던 아우처럼.

황혼녘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천국에서 한나절을 보내어 정말 행복했다고. 늘 오늘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내는 우리가 되자고. 천국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고. 아우는 자신 안의 진주를 꺼내볼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고 말해주었다. 행복은 늘 나의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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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멍석 육인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