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경제신문최저임금위원회가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6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을 심의했으나 합의에 실패했다. 이번에도 최저임금 선정은 법정 기한을 넘겼다. 역대 최저임금위원회가 법정 기한을 지킨 적은 거의 없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최저임금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 심의 요청을 한 날로부터 90일 안에 의결을 마쳐야 한다. 고용부 장관이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한 것은 지난 329일이었다. 사실상 이날이 데드라인이었다.

사용자위원들은 이날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내년도 최저임금안을 처음으로 제출했다. 올해 최저임금과 같은 시간당 8720원이었다. 내년도 최저임금 동결을 요구한 것이다. 사용자위원들은 동결 근거로 국내 최저임금이 중위 임금의 60%를 초과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G7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코로나19 사태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임금 지급 능력이 취약하다는 점 또한 강조했다.

반면 근로자위원들이 지난 24일 제5차 전원회의 직전 공개했던 요구안은 올해보다 23.9%나 인상된 1800원이었다. 양측의 격차가 2080원에 달한다. 근로자위원들은 생계비, 노동생산성과 소득분배율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요구 금액이 이렇게 차이가 크다보니 접점을 찾지 못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결국 다음 달 6일 제7차 전원회의에서 심의를 계속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첫해인 2017년 최저임금위원회는 2018년 최저임금을 16.4%나 올렸다.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대통령 공약을 실현시킨다는 명분에서였다. 2019년에는 10.9%이 인상됐다. 2년 연속 두 자리 인상이 이뤄지자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에 몰렸다. 그 결과 저소득층의 일자리가 대폭 줄었다. 저임금을 해소하려던 것이 오히려 생존 위기를 불러오는 역설(逆說)이 발생한 것이다.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은 격렬한 사회적 논란을 불러왔다. 민심 이반 조짐까지 우려됐다. 결국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의 어렵다는 점을 사과해야 했고, 그 결과 2020년과 2021년의 최저임금은 각각 2.9%, 1.5% 오르는데 그쳤다. 그럼에도 집권 초기 추진한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 여파는 아직까지 우리 경제에 짙은 그늘로 남아있다.

선의로 추진했다고 결과가 반드시 선()하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는 게 세상일이다. 생각 못한 부작용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상대의 어려움은 외면한 채 내 욕심만 챙기다가 낭패를 본 사례는 얼마든지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최저임금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내년도 최저임금 선정 법정 기한은 넘겼지만 아직 협의할 시간은 남아있다. 고용부 장관이 내년도 최저임금을 고시하는 날은 85일이기 때문이다. 고시 절차에 2주가 걸리는 만큼 7월 중순까지만 합의하면 된다. 그래야 혼란을 막을 수 있다. 여유가 결코 많지 않다.

보름 남짓한 기간 안에 합의안을 도출해 내기 위해선 공익위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마다 공익위원들은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 아닌가. 이번에도 양측의 요구안을 잘 조율해 우리 경제에 무리가 가지 않는 합의안을 이끌어내야 한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서 말이다.

최저임금은 생계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임계점을 넘기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대기업 노조의 임금 인상 욕구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수는 없다. 사용자의 임금 억제를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노사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조속한 시일 내에 합의안을 이끌어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