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시공 후 계약’으로 하도급대금을 부당하게 깎고 위탁 내용 임의로 취소한 대우조선해양 제재
시정명령·과징금 153억원·법인 고발 결정

【월드경제신문 김창한 기자】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대우조선해양이 하도급업체들에게 선박·해양플랜트 임가공 및 관련 부품 제조를 위탁하면서, 사전에 계약 서면을 발급하지 않은 행위, 하도급대금을 부당하게 결정한 행위와 위탁 내용을 부당하게 취소·변경한 행위에 시정명령, 과징금 153억원과 법인 고발을 결정했다.

29일 공정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186개 사내 하도급업체에게 1만6681건의 선박·해양 플랜트 제조 작업을 위탁하면서, 작업 내용과 하도급대금 등 주요 사항을 적은 계약서를 작업이 시작된 후에 발급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사내 하도급업체에게 선박·해양플랜트 임가공 작업을 위탁했다. 계약서면 1만6681건 가운데 서면발급일보다 작업시작일이 빠른 계약이 7254건, 서면발급일보다 최초 작업실적 발생월이 빠른 계약이 9427건이었다.

이로 인해 하도급업체는 구체적인 작업 및 대금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우선 작업을 진행한 후에, 대우조선해양이 사후에 일방적으로 정한 대금을 받아들여야 하는 불리한 지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91개 사내 하도급업체에게 하도급대금을 결정하지 않은 채 1471건의 수정 추가 공사를 위탁하고, 공사가 진행된 이후에 사내 하도급업체의 제조원가보다 낮은 수준으로 하도급대금을 결정했다.

수정 추가 공사는 사전 계획된 본 공사와 구분되는 작업으로, 선주 요청·오작·변형 등의 사유로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제조원가는 사내 하도급업체 제조원가의 대부분을 인건비가 차지하는 특성상, 근로자의 시급 및 4대 보험료를 바탕으로 산정한다.

작업 현장에서 수정 추가 공사가 발생하면, 사내 하도급업체에게 직접 작업을 지시하고 확인하는 대우조선해양의 생산 부서에서 실제 투입시수(실제 투입 노동 시간)를 바탕으로 수정 추가 시수를 산정해 검토 부서·예산 부서의 검토를 요청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의 예산 부서는 합리적·객관적인 근거 없이 생산 부서가 요청한 수정 추가 시수를 삭감했고, 이 과정에서 작업을 직접 수행하고 하도급대금을 받을 사내 하도급업체와의 협의 절차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사건 시수 계약의 하도급대금은 ‘시수’ 와 ‘임률단가’를 곱해 결정되는데, 작업에 소요되는 ‘시수’는 대우조선해양이 임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반면, ‘임률단가’는 계약 기간 동안 고정된 값이다. 따라서, 대우조선해양은 시수를 임의로 적게 책정하는 방법으로 사내 하도급업체들에게 지급할 하도급대금을 삭감한 것이다.

공정위는 사내 하도급업체의 거래 특성상 제조원가의 대부분이 인건비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감안해, 사내 협력사들의 인건비 구조·고용노동부 실태조사 자료·실제 채용 공고 사례 등을 바탕으로 작업에 소요되는 최소한의 ‘1시수 당 비용’ 기준을 판단했다.

그 결과, 대우조선해양의 시수 삭감 과정에서 1471건의 수정 추가 공사 하도급대금이 하도급업체의 제조원가 수준보다도 낮게 결정된 사실이 확인됐다. 1471건의 수정 추가 공사에서 실제 투입 시수는 24만9430시수였으나, 인정된 시수는 6만8625시수에 불과했으며, 제조원가와 하도급대금의 차액은 약 12억원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하도급대금 결정 과정에 사내 하도급업체와의 협의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작업이 진행 중이거나 끝난 후 대우조선해양이 내부적으로 결정한 금액으로 계약이 체결됐다.

대우조선해양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사외 하도급업체에게 선박·해양플랜트 부품 등의 제조를 위탁한 후 사외 하도급업체의 책임으로 돌릴 사유가 없음에도 194개 사외 하도급업체에 대한 총 11만1150건의 제조 위탁을 임의로 취소·변경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사외 하도급업체에게 선박·해양플랜트 제조에 필요한 철의장품, 배관품 등의 부품 제조를 위탁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설계 변경·선주 요구 등으로 위탁한 품목이 필요 없거나 수량이 줄어들게 되면 해당 품목의 발주를 취소·변경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위탁 변경 시스템(이하 조달협업시스템)을 통해 사외 하도급업체에게 위탁 취소·변경 동의 여부만을 선택하도록 했을 뿐, 협력사가 입게 될 손실 등의 실질적인 협의 절차는 존재하지 않았다. 조달협업시스템에는 위탁 취소·변경 사유를 입력하는 항목이 설정되어 있지 않아, 사외 하도급업체들은 이유를 모른 채 동의 여부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공정위는 대우조선해양의 사전 서면발급의무 위반,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 부당한 위탁 취소 행위에 시정명령(재발방지명령 ‧ 공표명령)과 함께 과징금 153억원을 부과를 결정하고, 법인을 검찰 고발했다.

공정위은 "이번 조치는 대우조선해양의 계약 절차 등의 문제점에 기인한 위반 행위를 제재해, 관행적인 불공정 행위에 제동을 걸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며 "사전에 하도급업체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작업을 시작한 후에 계약서를 제공하는 관행적인 ‘선 시공 후 계약’ 행위를 엄중히 조치한 것으로, 향후 서면발급의무가 충실히 지켜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공사가 이미 시작돼 대금 결정 시 불리한 지위에 있는 하도급업체를 대상으로 하도급대금을 낮게 결정한 행위를 제재한 것으로, 향후 하도급대금 결정 과정에서 투명성이 확보되고 실질적인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협의 없이 위탁 취소 동의 여부만을 선택하도록 하는 행위를 제재해 향후 실질적인 협의 과정을 통해 위탁 취소가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부당한 위탁 취소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