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경제신문】공정거래위원회가 회사 이름도 모른 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고발해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고 한다. 공정위가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하면서 표시광고법을 위반한 SK케미칼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 및 시정명령을 내린 것은 지난 12일이었다.

그러나 SK케미칼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사명(社名)을 ‘SK디스커버리’로 변경한 것은 작년 12월 1일이었다. 더군다나 지난달 5일에는 바뀐 사명으로 상장까지 했다. 공정위는 이 같은 사실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한 채 엉뚱한 법인에 대해 고발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공정위가 이러한 사실을 스스로 파악한 것도 아니다. 검찰이 고발요청서에서 오류를 발견해 반려하고서야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렇게 되다보니 공정위는 이 사건에 대한 처분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을 수밖에 없게 됐다.

검찰로서도 가해 회사를 눈앞에 두고 수사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표시광고법 위반은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기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공정위는 부랴부랴 심사보고서를 다시 작성해 SK디스커버리에 보냈다. 또한 사건 심의를 위한 전원회의를 오는 28일 다시 열기로 했다. 잘못을 고치기 위해 필수적인 절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오는 4월 2일이면 만료된다. 공정위가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면서 공소시효가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된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공정위는 SK디스커버리 측이 사명 변경 등을 알려주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공정위가 사실상 무혐의인 ‘심의절차 종료’ 결정을 내리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두 번이나 직접 사과한 것도 이 때문이지 않는가. 그러니 공정위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인한 사망자는 120여명에 달한다. 이것도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워낙 피해가 장기간에 걸쳐 발생해 정확한 실상을 가려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병상에서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도 많다. 그런 만큼 전 국민이 피해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건을 이렇게 안이하게 처리할 수 있는 공정위의 무신경이 놀라울 따름이다. 과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앞에서도 이러한 변명을 할 수 있겠는지 공정위는 스스로 자문(自問)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