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헷지펀드 엘리엇,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반대

【월드경제신문 김창한 기자】일명 ‘먹튀’ 논란으로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외국계 주주들이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국내 대기업들의 약점을 집중 공략하며 본격적인 실력행사에 나서면서 국부 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울러 작은 지분으로 그룹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재벌가의 족벌경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최근 계열사 합병을 통한 경영권 승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행보에 눈길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미국계 헷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사(이하 엘리엇)가 삼성물산 주식 7.12%(3대 주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하고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맡고 있는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하려는 계획에 반기를 들고 나서 주목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번 합병 결정과 관련해 합병비율 및 사업 시너지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증권업계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무산시키려는 엘리엇의 공격적인 행보에 대해 국내 재벌들이 소수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왜곡된 지배구조가 글로벌 투기 자본에게 약점이 잡혀 경영권이 흔들리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주주가치보다는 오너의 경영권 보호를 우선 시하는 재벌의 취약한 지배구조가 개편되지 않을 경우 앞으로도 외국계 주주들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내다봤다.

엘리엇은 4일 공시를 통해 제일모직과의 합병 조건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게 산정됐다며 합병 반대 입장을 밝혔다.

삼성 측은 이번 제일모직과 삼성물산간 합병이 자본시장법 상의 규정대로 합병비율을 산정했으며 회사의 미래가치를 제고해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지난해 매출규모를 놓고 따져 볼 때 제일모직보다 삼성물산이 5배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합병비율이 1:0.35로 결정된 것은 합병조건이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엘리엇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이번 합병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승계가 목적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삼성물산의 주가가 가장 부진한 시점에 제일모직과의 합병이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엘리엇은 한발 더 나아가 삼성물산 최대주주인 국민연금(9.79%)에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반대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하는 등 삼성에 대한 압박 수를 점점 높여가고 있다.

증권업계와 제계 일각에서는 엘리엇이 과거 아르헨티나 국채를 헐값에 인수한 다음 액면가 전액을 상환하라며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전력이 있는 만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이슈를 법적 분쟁으로 끌고 갈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삼성 측은 겉으로는 합병에 문제가 없다며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속내는 엘리엇의 속셈을 파악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의 왜곡된 지배구조 도마에

한편 이번 사태와 관련해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은 4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간의 합병, 누구를 위한 합병인가?’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재벌들의 투명하지 못한 왜곡된 기업지배구조를 꼬집었다.

박 의원은 과거 외국계 헷지펀드에 의한 먹튀 사례와 엘리엇이 경영참여를 목적으로 삼성물산 주식을 추가적으로 취득한 것을 비교하며 국부유출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총수일가가 작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후진적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재벌들의) 이러한 취약점을 공격하는 외국계 헷지펀드에 의해 막대한 국부가 유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대표적인 사례로 SK와 소버린 사태와 2004년 삼성물산에 대한 영국계 헷지펀드인 헤르메스의 공격을 비롯해 KT&G에 대한 칼 아이칸 등의 공격 등을 꼽았다.

박 의원은 “현재 (삼성물산) 주가가 7만 원대여서 엘리엇이 실제로 삼성물산 주식의 반대매수청구권(주식 가격 5만 7234원)을 행사할 가능성이 낮지만 만약 엘리엇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하는 투자자들을 규합해 17%이상의 주주들이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합병은 무산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의원의 주장처럼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 될 경우 삼성입장에서는 합병비율을 삼성물산에게 다소 유리하게 재조정해 합병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엘리엇은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기게 된다.

이에 박 의원은 “이번 기회에 국내 재벌들이 작은 지분으로 그룹의 경영권을 지배하려는 기형적인 기업지배구조에서 벗어나 총수일가보다는 주주이익을 우선하는 경영풍토를 정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이번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건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대 움직임을 통해 (국내 재벌들의)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절차로는 더 이상의 사업재편 내지 (경영권) 승계 작업이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사실이 증명됐다”며 “필요할 경우 합병 결의를 재고하는 한이 있더라도 삼성그룹은 사업재편 과정에서 주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자와 충실한 협의과정을 다시 밟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