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인 손해배상제도 도입 되나

【월드경제신문=홍석기 기자】온 국민을 슬픔과 충격으로 몰아넣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한 달 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세월호 운영사인 청해진해운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수사 중인 검경합동수사본부는 현재 도피 중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이 이번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핵심 인물로 보고 현상금 5억 원을 내걸고 지명수배까지 내린 상태다.

검찰 수사를 통해 볼 때 이 사건은 기업 오너 일가의 탐욕이 부른 대참사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때문에 정부와 정치권은 ‘세월호 참사 특별법’ 등을 제정하기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물적·인적 피해에 대한 책임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제2의 세월호’ 피해를 막기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세월호 사고를 통해 우리나라 항만 이용 소비자에 대한 안정장치나 제도가 부실할 뿐 아니라 기업이 소비자 안전을 고려한 시설, 교육, 서비스 모든 분야에 걸친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정부의 부실한 관리실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비단 세월호 사고뿐만 아니라 그동안 크고 작은 항만, 항공, 자동차 등 교통이용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았지만 정부와 기업은 눈앞의 사고 수습에 급급해왔다.

이렇다 보니 사고 이후에도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 등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기업의 안전의식 강화는 공염불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매년 되풀이 되는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이 추진되고 있어 주목된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공동으로 발의하기로 잠정 합의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민사재판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보다 더 많은 손해배상을 하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기업이 사전 예방적인 노력을 충분히 했다면 방지 할 수 있는 사고를 방치함으로서 소비자의 인명과 재산에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 될 경우 일상적인 보상의 차원을 넘어 그와 유사한 행위가 다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강력한 처벌적 성격을 띤 손해배상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대형 사고의 재발 방지에 상당한 효력을 발휘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재난이 많이 발생하는 국가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징벌적 손해배상 사건으로 꼽히는 이른바 ‘맥도날드 할머니’ 사건을 비롯해 최근 현대 티뷰론 차량 결함으로 인한 배상 사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맥도날드 할머니 사건의 경우 미국 법원이 286만 달러를 피해보상금으로 판결했다.

이 사건은 1994년 미국에서 뜨거운 맥도널드 커피가 쏟아져서 화상을 입은 할머니가 맥도널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맥도널드는 286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미국 법원의 판결을 받아내 승리했다.

티뷰론 사건의 경우 지난 14일 미국 법원 배심원단은 2011년 일어난 교통사고에 대해 자동차의 제조결함이 원인이라고 판단, 피해 유가족에게 2억4000만달러(약 2470억)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했다.

사고원인이 티뷰론의 조향너클(steering knuckle) 부위가 부러져서 중앙선을 넘어 맞은편에서 오던 차를 들이받은 것이라는 유족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

지난달에는 미국의 연방법원 배심원단이 일본 제약사가 당뇨병 치료제의 발암 위험을 알고도 은폐했다며, 6조 원이 넘는 손해배상 평결을 내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같은 징벌적 손해배상은 피해 보상 액수가 천문학적이기 때문에 기업에게 경각심을 고취시킬 뿐만 아니라 장래에 발생할 수 있는 불법적 행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 전보적 손해배생제도를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보적 손해배상제도의 경우 최종적인 목적이 ‘보상’이기 때문에 ‘사건의 재발을 방지’ 차원의 경각심을 고취시키기 어렵다는 맹점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서 기업적 손해에 대해 일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인정하고 있지만 적용 폭이 매우 좁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녹색소비자연대는 이주홍 소비자권리팀장은 “그동안 우리가 겪은 사고들은 대부분 인재였다”고 전제하고 “사고가 발생하면 인재라고 하면서 떠들썩 했다가도 지나가고 나면 안전은 뒷전인 채 이익에만 몰두하는 기업이 여전한 이유는 얼마되지 않은 손해배상금으로 사고가 수습되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목숨과 안전을 담보로 하는 항만, 항공, 철도, 도로에서 벌어진 사건에 우선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이 팀장은 “항만 등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경우 발생 시 인명적 피해가 크기 때문에 사건 자체에 대한 보상보다 앞으로 벌어질지 모르는 미연의 사고 예방이 더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벌어진 사고를 넘어 서서 이와 유사한 행위가 다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국가적 처벌성격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